19세기 초 미국에 찰스 모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투자가였다. 그는 고래 사냥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 당시에 전 세계가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오일 램프에 고래 기름이 들어갔고 고래 기름은 경뇌 양초의 원료가 되기도 했다. “칸델라”라고 하는 빛의 단위는 경뇌 양초 하나의 밝기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고래 기름으로 만든 양초는 그만큼 주요한 광원이었다.
찰스 모건이 고래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고래 산업이 50년 이상 성숙해가던 때였다.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이었기에 정부가 이미 장악하고 있었고 세세하게 법제화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모건은 일곱 척의 포경선을 구축했다. 1841년에 고래 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여덟 척째의 포경선을 추가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모건은 고래 산업이 점점 레드오션이 되어감을 감지한다. 또한 고래의 개체 수도 감소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847년 그는 포경선들을 팔고 광산업, 철도건설업, 은행업 등 사업 아이템 다양화를 모색했다. 모건이 결단을 내린 타이밍은 결국 옳았다.
1849년 어느 캐나다 지질학자가 역청 타르에서 기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고 케로신(등유)이라고 이름 붙인다. 얼마 안 가 케로신은 세계 시장을 석권하여 사람들은 고래 기름 램프보다 훨씬 저렴한 케로신 램프를 사용하게 되었다. 1850년대에는 석유 추출물인 파라핀이 발명되었다. 그로 인해 고래 기름으로 만든 양초 수요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수십 년간 크게 성장하고 시장을 지배해왔던 고래 사냥의 시대는 이렇게 단 몇 년 만에 끝이 나고 만다. 고래 산업 종사자들이 단번에 모두 파산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석유 산업에 기회가 있음을 보았고 뛰어들었다.
역사학자 사무엘 존 밀스 이턴은 1866년 당시 아래와 같은 평을 했다. “기존의 많은 고래 업자들이 돛배와 작살을 가지고 바닷속 괴물을 찾던 그 열정으로 이제는 석유가 나는 곳을 찾아서 땅을 파내고 있다.”